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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ep11 태평양전쟁 람보:영웅의 탄생 & 제로전투기의 몰락 [과달카날 전투2]

  • 작성자 : sayida58
  • 작성일 : 21-11-12 07:37
  • 조회수 : 6

람보:영웅의 탄생 & 제로전투기의 몰락 [과달카날 전투2]★역전다방ep11☆태평양전쟁

과달카날전투 가 소모전으로 이어지자 

일본 대본영에서는 '작전의 신' 이라 불리는 

츠지_마사노부 를 투입!

3차공격 을 시도하지만 상륙 과정에서 식량의 절반과 

탄약 80%를 상실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 

덥고 습한 정글 을 뚫어야 하는 고된 행군으로 그마저 있던 

중화기와 화포마저 버려 버리는데... 과연 작전의 신의 선택은??

그리고 일본의 총공세에 미 해병대 가 맞섰던 핸더슨비행장 전투 

탄띠 를 목에 두르고 M1917 기관총을 손에 들고 쏘아대는 

람보 가 나타났다는데..


14:14 "고립된 일본군 생존 기간 판별법"


서 있는 자는 30일

부축받고 설 수 있는 자는 20일

누운 채로 용변보는 자는 3일

말을 못 하게 되면 2일

돌아눕지도 못 하는 자는 다음날...

의무병도 손 쓸 수 없는 상황.


극단적인 선택 속출.

일본군에게 닥친 미 해병대의 끝장전 KO작전.

일본 수송선단의 소수의 축차투입 = 일본 수송능력의 한계

'수송'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 한 패배.


조선인 노무자들도 아사...

잘못된 작전이 빚어낸 비극.

과달카날 전투 일본 육군 전사자 총 21,000여명

15,000명이 굶어서...


44:20 한 편 연합함대 핵심 참모들이 탄 폭격기 추락 후

남아있던 6대의 호위전투기

무사히 생환

파일럿 6명 모두 생존

에이스로 호위임무를 맡았던

이들의 나이는 

고작 18세에서 24세

이 파일럿들은 어떻게 됐을까...

야마모토 사령관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

군법에 회부할 죄목이 없어

처벌은 없음

스스로 역적이라고 자책

죽음으로 갚을 수 밖에 없다

이후 전투에서 6명 중 5명 격추 전사

야나기야 켄지 (일본 해군 비행병장)

1943년 6월 7일

과달카날 인근에서 교전 중 부상

오른손을 잃는 중상을 입고 일본으로 송환

전쟁 끝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1인

훗날에 그의 증언으로 야마모토 사건 재구성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오랜 침묵을 깬 야나기야 켄지

그의 증언에 따르면...

야마모토 사령관의 탑승기가 추락하자마자 든 생각

'더 이상 살아돌아갈 수 없다'

에이스로서 호위 임무에 실패한 것을 

수치로 여기며

"적의 더 많은 비행기를 격추하겠다"

최대 격전지로 자원했다는 그들

그들의 선택은 자원 이었을까

암묵적 처벌 이었을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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