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공사판, 비정규직, 하청업체, 청년….’
산업재해 현장을 전하는 소식들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이 포함된 사고 현장에 최근 부쩍 자주 눈에 띄는 단어가 특성화고교(직업계고교) 출신이다. 전문 직업인을 양성한다는 특성화고 학생들은 성인의 문턱을 넘기 전부터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 노동의 밑바닥에 투입된다. 어리고 힘없는 그들은 부조리한 업무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그렇게 또 한 명의 사고 피해자로 기록된다.
지난달 6일 전남 여수에서 요트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다 숨진 홍정운(18)군도 그랬다. 여수해양과학고 현장실습생인 홍군은 잠수기능사 자격증이 없었지만 바다에 들어가라는 대표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홍군을 위해 친구들은 지난 7일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친구들이 행진하는 서울시청 앞 거리엔 ‘내 곁에만 있어줘, 떠나지 말아줘’라는 노래 가사가 흘렀다. 생전 홍군이 좋아하던 ‘밤하늘의 별을’이라는 노래였다.
특성화고교 학생들은 취업 순서로 서열이 정해진다. 성적이 높거나 기능경진대회 같은 외부 실적이 있는 학생을 필두로 하나둘 취업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남은 이들은 초조해진다. 열악한 근로 조건이라 해도 ‘낙오자가 될 수 없다’는 걱정에 일단 어디든 붙잡으려 했다. 영세한 업체일수록 학교의 관리감독도 허술했다. 국민일보가 만난 한 재학생은 매일 고무장갑만 낀 채 튀김솥에 손을 넣어야 하는 급식 조리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른들이 ‘사회생활은 원래 다 위험하고 힘들다’고 해서 적응하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졸업 후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가 붙인 ‘고졸’이라는 꼬리표는 떼어내기 어려웠다. 영세업체에 첫발을 디딘 특성화고 졸업생에게 더 좋은 환경에서의 일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그저 ‘고졸’로만 인식될 뿐이다. 일자리는 부족했고, 더 열악하고 더 위험한 곳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쉽지 않다고 했다.
지난 9월 27일 인천 송도 외벽작업 중 추락해 숨진 차모(29)씨, 지난달 18일 경북 포항의 폐기물 재활용 공장에서 환풍기 교체 작업을 하다 추락해 숨진 함모(28)씨도 모두 특성화고 졸업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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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다 먼저였던 돈
“언제까지 우리 직원들끼리 이 작업을 해요. 전문업체 좀 부르자니까. 누구 하나 죽어봐야 알 거예요?” 회사에 여러 차례 전문인력을 불러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공장 지붕 환풍기 교체 작업은 늘 거기서 일하던 직원들의 몫이었다. 안전장치 없이, 전문가도 아닌 이가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나면 큰 피해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다.
문제는 늘 비용이었다. 환풍기 교체를 전문업체에 맡겨 지붕을 다 뜯어내면 시공비만 9000만원가량이 든다고 했다. 결국 회사는 직원들이 직접 지붕으로 올라가 조금씩 보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생산팀이던 나를 비롯해 전혀 다른 업무를 하던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나 지붕에 올랐지만 고소공포증 탓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환풍기 교체 작업이 있는 날이면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럴 때마다 5년 전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고졸이지만 이곳에선 나를 ‘대리’로 불러줬다. 월급명세서에 선명하게 찍힌 ‘대리’라는 단어를 보면 왠지 뿌듯했다. 작은 회사지만 1~2년 정도 돈을 모으면 여자친구와 결혼할 수 있겠다는 꿈도 꿀 수 있었다.
철 소재의 부산물을 재활용하는 공장 특성상 물만 닿아도 화학반응으로 인해 불이 나는 자재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회사 대표는 종종 늦은 밤 문자를 보내 ‘공장 순찰을 돌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마다 회사로 돌아와 순찰을 돌았다. 밖에서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도 어김없었다.
3조 3교대에서 4조 3교대로 갑자기 근무 형태가 바뀌어 급여가 월 200만원 초반대로 줄었을 때는 잔업을 해서라도 줄어든 급여를 메워야 했다. 월급 내역서에 추가 잔업 시간이 50시간까지 찍힌 날도 있었다. 한 주 근무 시간이 58시간이던 때도 잦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처음 사회를 맞닥뜨린 고교 현장실습 때부터 취업 현장은 늘 교대 근무와 초과 근무가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대학에 간 형에 이어 나까지 대학을 갈 순 없었다. 그렇게 포항의 한 특성화고 동력기계과에 진학했고, 또래보다 일찍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찼다. 2011년 3학년 2학기에 나간 현장 실습 업체가 첫 직장이었다. 2조 2교대로 돌아가는 수원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실습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추천을 해준 곳이었다. 졸업 후에도 이곳에서 근무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파이프 업체 등 작은 업체에 1~2년씩 다니다가 그만두는 일을 반복했다.
첫 직장부터 옮긴 회사들은 하나같이 열악하고 위험했다. 2019년 6월에는 숨지기 전까지 일했던 직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손이 말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손목이 부러지고, 옆구리 뼈에 금이 갔다. 병원에서 회복할 틈도 없이 회사로 출근했다. 회사는 “산재 처리를 하면 감사가 나올 수 있으니 공상 처리를 해 달라”고 매달렸다. 근처 다른 작업장에서 비슷한 인명 사고가 나 떠들썩하던 때였다. 그렇게 회사에서 치료비만 받고 깁스한 채 출근했다.
추락사고가 있었던 지난달 18일은 출근길 공기가 유달리 차가웠다. 올해 처음 포항에 찾아온 한파였다. 회사에선 어김없이 지붕 환풍기를 교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안전모를 쓰고 안전띠를 챙겨 지붕으로 올라가는데 동료들로부터 “참 유별나다”는 농담이 날아왔다.
형제에게 되풀이된 비극
그날 지붕에 올라갔던 함씨는 오전 9시24분쯤 공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생성된 암모니아 탓에 심하게 부식된 채광창을 밟은 게 실수였다. “아프다, 아프다”는 말을 반복하던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현장에는 마지막 구명줄인 안전 로프만 덩그러니 놓였다. 지붕 어디에도 안전 로프를 연결할 설비는 보이지 않았다. 작업 발판과 안전망 등 추락 방지 장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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